사회언어학의 과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제반 문제들과 얼마나 성실하게 씨름하면서 고뇌하느냐에 따라 그 질과 양이 결정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언어가 인간의 삶의 문제와 진지하게 연결될 때에만, 언어학의 사막화를 막아주는 아름다운 오아시스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社会言語学の課題は、自分が生きている社会における諸般問題にどれぐらい誠実に直面し、苦悩するかにより、その質と量が決まる。末には、人間が生きていく上で発生する諸問題と言語が密接につながってはじめて、言語学の砂漠化を防いでくれる美しいオアシスを発見できよう。) ―『문제로서의 언어1(사회와 언어) 問題としての言語1(社会と言語)』p.13
김하수(キム・ハス): 元延世大学校教授、元韓国社会言語学会会長、元国立国語院言語政策部長
사회언어학 연구는 흔히 노동자 계급의 화자, 도시 안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외떨어지고 산업화되지 않은 문화 집단, 여성 등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집단의 구성원들에 관해 진행된다. 이들을 연구하는 사회언어학자들의 목표는 이들에 관한 고상한 무언가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즉, 언어 변이 및 변화에 관한 질문에 답을 원하는 것에 덧붙여, 말하는 방식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무시되는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아마도 이들을 항상 도와주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권력과 통제 문제에 대해 주장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힘이 약한 집단에 대한 서술은 쉽사리 비평으로 보여질 수 있으며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쉽사리 생색내기로 비춰질 수 있다.(1대 1의 상호작용 척도에서 볼 때, 우월한 사람의 도움 제공은 고맙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화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선의로 행한 언어학 연구는 때때로 연구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방해한다. Cameron 등(1992)이 지적하듯이, 사람 집단을 '탐구'하는 연구는 사람 집단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또한 지니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권리포기서가 얼마나 많이 덧붙여지든지 간에, 어떤 언어 변이를 "아프리가계 미국인 토착 영어" 또는 "남부 말"이라고 딱지 붙이는 것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또는 남부인이라는 화자 집단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이는 잠재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남부인들이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말의 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흐리게 한다. ー『사회언어학의 질적 연구방법(社会言語学の質的研究の方法); 엄철주訳』pp.104-105
Barbara Johnstone(バーバラ・ジョンストーン): カーネギーメロン大学教授
社会言語学の研究はよく、労働者や都市に住むアフリカ系アメリカ人、産業化されていない孤立した文化集団、女性など、比較的に力のない集団のメンバーについて行われる。彼らを研究する社会言語学者たちの目標には、彼らに関する高尚な何かを含んでいることが多い。つまり、言語変化および変異に関する質問に答えを出すことに加え、言い方が否定的に認識され、無視されている人に理解を示しながら、彼らの役に立ちたがる。しかし、権力と統制の問題に対抗する手段として力の弱い集団を記述することは、批評になりかねない。そのうえ、誰かを「助けが必要な人」であると判断することは恩着せがましいと感じられやすい(1対1の相互作用の尺度で見た際、立場が上の人の助けは感謝されることもあれば、かえって彼らを怒らすこともある)。また、善意で始めた言語学の研究は、時折、研究対象となる人々を分裂させ、妨害する。 Cameronほか(1992)が指摘するように、人の集団を「探求」する研究は、人の集団を「作り出す」効果をも有していることを覚え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免責条項をいくら設けても、ある言語変異を「アフリカ系アメリカ人英語」または「南部アメリカ英語」とレッテルをつけることは、アフリカ系アメリカ人や南部アメリカ人という話者集団を作り上げることになる。そしてこれは、潜在的にアフリカ系アメリカ人と南部アメリカ人が多様なアイデンティティと、多様な言葉の方式を持っているという事実を曇らせてしまう。ー『Qualitative Methods in Sociolinguistics(社会言語学の質的研究の方法)』
Barbara Johnstone(バーバラ・ジョンストーン): カーネギーメロン大学教授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쥐어짜기 혹은 자기극복의 순간들이 꾸준히 쌓여 궁극적으로 발전한 나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작용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혼신의 힘으로 쥐어짜내어 내 평소 가진 실력 이상의 것을 얻게된다면, 나는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얻은 최고의 성적을 자신의 ‘평균수준’으로 인식하고 난다면, 나는 그 수준을 재현하지 못함에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이고, 다음 관문에서도 지난번과 같은 또다른 요행을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짜내기”를 반복한다면 마치 내 인생을 막판 스퍼트하듯 달려야 할텐데, 사실 인생은 그렇게 막판 스퍼트를 자주 할 만큼 짧은 순간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순간순간에 “최선” 혹은 “무리”를 하여 가랑이 찢어가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더 높은 확률은 결국 내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다. 가랑이가 찢어지고 나면 나는 절뚝절뚝 아픔을 안고 올라가야 할 것이며, 결국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서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 길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멀리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달리는 사람이 멀리가는 것이다. 그리고 멀리 가려면, 우선 즐겨야 한다. 극한의 괴로움 속에서 짜냈을 때 기쁨을 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기쁨은 대부분 성취에서 오는지라 ‘성공이냐 실패냐’와 같은 외부적 잣대에 좌우될 때가 많다. (...) 사람은 경주마가 아니다. 채찍을 맞아 수동적으로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채찍 맞는 말에게 오래 달리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열심히 쥐어짜내면서 올라가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풍경을 천천히 즐기면서 올라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엄태웅(Terry Taewoong Um) |